제 2부의 막을 올리겠습니다.
[제 2부: 강호 주유 (江湖周遊)]
제 9장: 새로운 시작, 의선의 제자 (醫仙의 弟子)
한 달 후, 사천(四川) 성도(成都)의 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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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후, 사천(四川) 성도(成都)의 번화가. |
이곳은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이자, 온갖 기인과 상인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도시였다. 그 북적이는 인파 속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두 남녀가 걷고 있었다.
한 명은 여전히 연둣빛 비단옷을 입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여인. 바로 녹의상단의 주인 모용설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깔끔한 청회색 무복을 차려입은 말쑥한 청년이 함께했다. 허름하고 불안에 차 있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하고 단정한 기품마저 느껴졌다.
그가 바로 무영이었다.
모용설은 무영에게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주었다. 강호에 이름 높은 신의(神醫)이자 은둔 고수인 '의선(醫仙)'의 마지막 제자. 이름은 무영이라는 본명을 그대로 쓰되, 성(姓)을 붙여 **'장무영(張無影)'**이라 칭했다. 의선의 제자라는 신분은, 그가 강호의 문파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지난 한 달간, 둘은 녹의상단의 비밀스러운 아지트에 머물며 많은 것을 준비했다.
모용설은 무영에게 내공을 다스리는 기본적인 심법과 호흡법을 가르쳤다. 그녀의 가문은 무공보다는 지혜와 의술, 기문둔갑에 능했지만, 내공의 원리를 이해하는 깊이만큼은 그 어떤 문파에도 뒤지지 않았다.
"기억하세요. 당신의 내공은 거대한 호수와 같아요. 힘으로 억누르면 둑이 터지지만, 물길을 만들어주면 가뭄 든 땅을 적실 수 있죠. 분노나 공포가 아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물길의 방향을 정하는 거예요."
무영은 그녀의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검귀가 남긴 귀혼천강경의 파괴적인 기운은, 모용설의 부드러운 심법과 만나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그는 사과를 따려다 나무를 뽑아버리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 두 사람은 첫 번째 '임무'를 위해 성도로 온 것이었다.
"우리의 첫 목표는 '흑영문'의 자금줄 중 하나로 의심되는 '철혈표국(鐵血鏢局)'입니다."
찻집에 자리를 잡은 모용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혈표국은 사천에서 가장 큰 표국이지만, 유독 흑도(黑道)와 관련된 흉악한 물건들만 전문적으로 운송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얼마 전, 그들이 서역에서 '무언가'를 운송해 온다는 첩보가 들어왔어요. 그 '무언가'가 흑영문의 실체에 다가갈 단서가 될 겁니다."
무영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속이고, 비밀을 파헤치는 일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오늘 밤, 철혈표국의 총표두(總鏢頭)가 연회를 엽니다. 우리는 의선의 제자와 녹의상단 대표 자격으로 그 연회에 참석할 거예요. 당신은 그저 제 곁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하기만 하면 돼요. 누가 진짜 흑영문과 연결된 인물인지, 그들의 눈빛과 행동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거죠."
그날 밤, 철혈표국의 연회장은 화려한 등불과 사천의 내로라하는 인사들로 가득 찼다. '의선의 제자' 장무영과 '녹의상단'의 모용설이 함께 나타나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철혈표국의 총표두, '패왕도(霸王刀)'라 불리는 왕일산은 우람한 덩치와 달리 교활한 눈빛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깍듯하게 두 사람을 맞이했지만, 모용설은 그의 눈 깊은 곳에 숨겨진 경계심을 놓치지 않았다.
무영은 모용설의 말대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의 초인적인 감각은 이제 무공뿐만 아니라, 사람의 미세한 표정과 기운의 변화를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남궁세가의 남궁 소협께서 당도하셨습니다!"
문지기의 외침과 함께, 당당한 풍채의 남궁혁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는 한 달 전보다 더욱 냉랭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혈마채 사건 이후, 독자적으로 사파의 행적을 추적하다 철혈표국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무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모용설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침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남궁혁은 말쑥하게 변한 무영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그저 모용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연회장을 훑어볼 뿐이었다.
"하하하, 남궁 소협까지 왕림해주시니 이 왕일산의 체면이 말이 아니구려!"
총표두 왕일산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남궁혁을 맞았다.
그 순간, 무영은 보았다. 왕일산이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남궁혁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연회장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상인을 향해 아주 찰나의 순간 머물렀다. 그리고 그 중년 상인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다.'
무영은 모용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모용설 역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잡아라!"
남궁혁이 갑자기 소리치며 허리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은 한 달 전의 그것이 아닌, 더욱 예리하고 묵직한 기운을 뿜어내는 새로운 검이었다. 그의 검이 향한 곳은, 바로 무영과 모용설이 주목했던 그 중년 상인이었다.
"네놈이 흑영문의 장로, '천수독왕(千手毒王)'이라는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남궁혁이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중년 상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털었다. 그의 소매에서는 수십 개의 검은 침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와 남궁혁을 덮쳤다.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두 물러서세요! 독입니다!"
모용설이 소리치며 해독단을 사람들에게 던졌다.
남궁혁은 뛰어난 검술로 독침을 대부분 쳐냈지만, 몇 개가 그의 팔을 스치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큭큭큭... 남궁세가의 애송이가 제법이구나. 하지만 내 부골독은 의선이 와도 풀지 못한다!"
천수독왕이 외치며 창문을 깨고 도주하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무영이었다.
"비켜라, 애송이!"
천수독왕이 무영을 향해 남은 독침을 모두 쏟아부었다.
하지만 무영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 주위로 끈끈한 기운의 막이 형성되더니, 날아오던 모든 독침이 그 막 안에 빨려 들어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귀혼천강경의 파괴적인 힘을, 모용설의 심법으로 부드럽게 제어한 결과였다.
천수독왕과, 독 때문에 비틀거리던 남궁혁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네, 네놈은...!"
무영은 대답 대신, 지체 없이 천수독왕의 혈도를 짚어 제압했다.
상황이 정리된 후, 남궁혁은 검게 변한 팔을 붙잡고 무영 앞에 섰다. 그는 무영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방금 전 본 압도적인 무위에 자존심이 상한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맙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군. 나는 남궁혁이라 한다. 그대는 누구인가?"
무영은 잠시 모용설을 돌아본 뒤, 침착하게 대답했다.
"의선 문하의 장무영이라 합니다."
그 대답에, 남궁혁의 눈빛이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의선의 제자라면, 저 정도 무공과 독을 다루는 능력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자신의 독도 해독해줄 수 있을 터였다.
한 달 전, 최악의 형태로 만났던 두 사람.
이제 한 명은 '정파의 후기지수'로, 다른 한 명은 '의선의 제자'로,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다시 마주 섰다. 흑영문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기나긴 악연은 이제 기묘한 인연으로 변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는, 무영이 남궁혁의 독을 치료해주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동료 의식이 싹트게 됩니다. 모용설은 제압한 천수독왕을 심문하여 '철혈표국이 운송한 물건'의 정체와 흑영문의 다음 계획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얻어냅니다. 세 사람은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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